빨강이라는 이름 아래에 빨강이 있고, 초록이라는 이름 아래에 초록이 있습니다. 세상은 늘 그런 식입니다. 어떤 이름 아래에 어떤 것이 있는 것입니다. 그것은 물체일 수도, 개념일 수도, 단순한 현상이나 고유한 속성일 수도 있습니다. 우리는 여기 손가락을 가리켜, 여기가 빨강이라고 지시합니다. 그것이 규칙입니다. 입으로 "빨-강"이라고 소리를 낼 때, 혀와 이빨이 마주치며 목구멍에서 나오는 바람의 소리, "빨-강." 그 소리를 내뱉을 때 우리는 우리 혼자 듣기 위해 내뱉는 것이 아니라 타인이 있기에 "빨-강"이라고 정보를 전달하는 것입니다. 만약에 우리가 빨강이라는 이름 아래에 초록을 가리킨다면 우리는 잘못된 정보를 전달하는 것이며, 규칙을 어기고 있는 것입니다. 언어는 그런 식으로 우리에게 책임을 묻습니다. 발화된 "빨-강"이라는 이름과 그 아래의 물체, 개념, 현상, 속성의 관계가 일치하지 않거나 그것이 타인을 이해시킬 수 없다면 우리는 응당한 책임을 지게 되는 것입니다. 문법은 법률이고, 발화는 주워 담을 수 없는 구조로 되어 있으며, 단어들은 우리에게 "너가 아래 있는 빨강을 빨강이라는 이름으로 부르지 않는다면 그 누구도 너를 이해할 수 없을 거야"라고 경고, 빨강색 경고를 하고 있는 것입니다.

경고의 목적은 우리를 두려워하게 만듦에 있습니다. "그 누구도 너를 이해할 수 없을 거야"라는 경고에 우리는 소스라치게 놀랍니다. 우리가 머리 속에 떠올린 빨강색을 "내가 지금 빨강색을 생각하고 있다"라고 말하고 싶지만 우리에게 빨강이라는 이름을 내뱉을 수단- 입으로 바람으로 소리를 만들어낼 혹은 손으로 글씨를 써낼 수도 없는- 아무것도 없는 방에서 혼자 몸짓으로 빨강을 표현하는 작업은 거대한 바위를 언덕 꼭대기까지 굴리는 일처럼 두려운 것입니다. 역설적이게도 예술의 목적은 그곳에 있습니다. 어떤 이름과 그 아래의 물체, 개념, 현상, 속성의 관계가 일치하지 않거나 타인을 이해시킬 수 없는, 표현하고자 하는 소리들, 점과 선들, 여러 가지 색들과 그 색을 만들어내는 다른 종류의 재료들, 몸짓과 숨소리, 눈빛과 소리 없는 단언, 언명, "여기에 이것이 있다"라는 비문법적인 표현, 그리고 그 표현으로 드러나는 부드러운 심연, 진창, 두려움. 그 두려움은 우리가 빨강색 핏덩어리이기 때문에, 몸과 생각과 언어는 오로지 타인이 존재하기에 존재하기 때문에, 그럼으로써 마땅히 존재하는 두려움을 이겨내고자 하는 행위가 예술이고, 그렇기 때문에 우리는 경고를 무시하고 예술을 만들어내야 하며, 빨강이라는 이름 아래에 빨강이 있지 않아도 우리는 마땅히 빨강이라고 말해야 하고, 그렇기 때문에 우리의 스튜디오도 빨강. 빨강이라고 말하고 있는 것입니다.